안녕하세요 클래식소리바다 입니다
이후 아라우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피아니스트로 미국 유럽에서 더큰 성공을 거둡니다.
오늘 연주가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미 칠레에서 태어난 인물인데..
남미칠레와 클래식 음악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기엔 다소 난해한 점이 있긴합니다.
위치는 남미에서도 최남단에 속하며 제일처음 떠오르는것이 잉카제국,산,빙하,모아이 정도 일것입니다.
지금도 도시를 제외하곤 다를바 없지만 1900년대 초는 말할필요도 없겠지요.
1903년 칠레 칠란이나 곳에선 칠레역사상 유래를 볼수없는 엄청난 천제가 태어납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1903~1991 칠레)
아마도 음악을 좋아하고 공부를했고 또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분들에겐 너무 벅차지 않을수 없는 이름인것 같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밑에서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3살에 누구도 가르쳐준적없는 베토벤을 글을배우는것보다 먼저 연주할수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도 클래식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칠레에서 5세에 독주회를 가져 큰성공을 거뒀으니 대단하다는 말밖엔 할수없는것 같습니다.
이후 1911년 아라우 가족은 칠레 정부의 후원으로 베를린으로 이주를 하게됩니다.
그리고 리스트의 제자인 마르틴 크라우제에게 배우게됩니다.
11세에 이미 베를린 데뷔를 성곡적으로 마쳤고 이후 독일전역으로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연주활동을하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22세 자신이 공부했던 슈테른 음악원의 교슈로일하다 급변하는 독일의 정세를 비해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전1937년 프랑크푸르트에 한 극장에서 일하는 여자 가수를 사랑하게되었는데 인물은 이후 가름아닌 아라우의 아내인 루스 아라우 입니다.
한집안에 연주자는 한명이면 된다 라고 아내는 결정하고 이후 연주활동을 그만두었고 평생을 아라우와 연주여행을 함께하며 내조만 했다 합니다.
이후 아라우는 자기의 결혼으로 아주 훌륭한 가수한명이 버려진것같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칠레에서는 아라우를 국보급인물로 인정하고 연주여행에 불편함이 없게 특별외교관 여권을 부여했고 수도엔 아라우 거리를 만들었다 합니다.
세월이 많이흘러 1989년 평생을 헌신했고 사랑했고 아라우를 보살폈던 아내 루스는 그곁을 떠나게됩니다.
86세의 아라우에게도 넘 큰 충격이고 슬픔이었습니다.
제가 어릴적엔 어떤음악전문잡지 음반소계기사에 아라우는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이후연주활동을 안했다 라고 읽은기억이 있는데 그땐 그것을 믿을수밖에 없었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 다시 알아보니 그시기에 자신의집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어깨와 손목을 고정하는 치료를 받았다합니다.
생각해보니 위대한 연주자의 삶을 약간은 미화했던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86세의 나이까지 왕성한 연주활동을 계속했다는것 자체가 놀랍지 않을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이유로 아내가죽고 연주활동을 전혀 하지않은체 지내다가 1991년 생과의 이별을 위한 녹음 the final sessions를 직접 선별한곡으로만 녹음하고 몇달후 그해6월 오스트리아에서 노환과 장수술 후유증으로 88세의 나이로 서거하게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2년만에 세상밖으로 다시나온 88세의노인의 마지막 레코딩이며 생과의 작별을 고하며 직접 고른 레퍼토리라는점과 젊은날 인간의 한계를뛰어넘은듯한 테크닉으로 연주하던것과달리 마치 생의마지막 힘겹게 뛰고있는 아라우의 심장처럼 모든것이 다소 느릿하고 광범위하지않은 다이나믹의 연주여서 당시 저에겐 오히려 큰 벅참이었고 감동이었고 아직도 그여운이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특히 드뷔시의 모든연주가 압권인데 그중 먼저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녹음했다는 그의 마지막 녹음중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곡 Clair de Lune(달빛)을 들어보실것을 추천드리며 다음에 다시 만나겠습니다.